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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고운 최치선 오늘처럼 비가 내리는 날 이미 자정을 훌쩍 넘기고 새벽이 찾아오는 시간 대리기사로 전업한 나는 요즘 부쩍 경쟁이 치열해진 악조건 속에서 손님 전화 오기를 기다리느라 스마트폰 화면에 눈을 떼지 못하고 산다 그 모습이 마치 솟대에 붙은채 매달려 있는 새 같다 서울을 떠나 태평양을 건너 북극곰이 살고 있는 알래스카까지 날고 싶은데 날지 못하고 서성대다가 벨이 울리면 푸드득 날개를 펼치고 솟대를 떠나 불빛 가득한 밤의 거리로 재빨리 뛰어간다 그렇게 새벽이 오는지도 모른채 달린 덕분에 내 어깨에 붙어있던 날개는 너덜너덜해졌다 그리고 다음날이면 또 어떻게 집에 갔는지 밤은 다시 나를 찾는다 얼마나 버틸수 있을까 솟대 위에 서 있는 두 다리도 이미 힘을 잃었다 새벽 4시에 손님을 데려다주고 택시비가 아까.. 더보기
새 살은 여름의 상처를 치유한다 고운 최치선 벗겨진 무릎의 상처도 나무의 껍질도 바위의 표면도 시간과 바람에 의해 새 살이 돋는다 새 살은 여름의 상처를 치유하고 손타지 않은 깨끗한 가을하늘로 바뀐다 눈에 들어 온 북한산의 나무들도 어제의 투정을 버리고 나이테가 하나 늘어난만큼 사랑스러운 얼굴로 변한다 사랑스러운 얼굴은 희미해지고 아픈가슴도 공기에 닿을 때처럼 기억의 부스러기를 본능적으로 쏟아낸다 기억속 하늘과 땅, 바람과 태양, 여자와 남자, 핏줄과 신경, 맥박과 근육의 수축, 피와 심장의 팽창들이 충돌하면서 만난다 하늘은 다시 격렬한 몸부림으로 물렁물렁해지다가는 딱딱하게 굳고 부풀어오르다가 쪼그라드는 열정의 반복 열정은 꿀벌이 꽃잎과 꽃샘에 집요하게 날개를 문질러대고 날개는 자꾸만 벗겨져 화끈화끈해지며 극도로 예민해져 새로운 세포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