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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시

고운 최치선


오늘처럼 비가 내리는 날
이미 자정을 훌쩍 넘기고 새벽이 찾아오는 시간
대리기사로 전업한 나는 요즘 부쩍 경쟁이 치열해진 악조건 속에서
손님 전화 오기를 기다리느라 스마트폰 화면에 눈을 떼지 못하고 산다
그 모습이 마치 솟대에 붙은채 매달려 있는 새 같다
서울을 떠나 태평양을 건너 북극곰이 살고 있는 알래스카까지 날고 싶은데
날지 못하고 서성대다가 벨이 울리면
푸드득 날개를 펼치고 솟대를 떠나 불빛 가득한 밤의 거리로 재빨리 뛰어간다
그렇게 새벽이 오는지도 모른채 달린 덕분에 내 어깨에 붙어있던 날개는
너덜너덜해졌다 그리고 다음날이면 또 어떻게 집에 갔는지 밤은 다시 나를 찾는다
얼마나 버틸수 있을까 솟대 위에 서 있는 두 다리도 이미 힘을 잃었다
새벽 4시에 손님을 데려다주고 택시비가 아까워 하염없이 걷다 보면 한남대교 위에서
힘껏 날고 싶은 충동을 참느라 입술을 깨문 적도 있었다
죽음은 무와 무의식의 상태거나 영혼이 변화하여 이 세계에서 저세계로 이주하는 것이거나
밤늦게까지 문을 닫지 않은 24시 해장국집처럼 어쩌면 영원히 꺼지지 않는 공간일지도 모른다
붉은 형광등 불빛에 알몸 드러낸 고깃덩어리처럼 새벽거리를 헤매며 쓰레기봉투를 찢는 길고양이처럼
운전대를 잡고 밤의 도로 위를 질주하는 야생마처럼 하지만 그 모습은 내가 아니다
나는 또 어떻게 집에 왔는지 모르지만 날기를 멈추지 않는다
다시 솟대에 앉기 전 나는 턱없이 부족한 호주머니 속 지폐 몇 장을 연료 삼아
꺾이고 볼품 없이 구멍 뚫린 두 날개에 희망을 주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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