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운 최치선
20년 동안 걸어 온 길을 뒤돌아 본다
내 몸의 제1전시실로 들어가는 길
양쪽 벽면을 꽉 채운 회색의 화면이 신비롭게 다가온다
흑백으로 덧칠된 피부는 화려한 기법을 사용한 무의식처럼 낯설게 하기를 권하고
지난 20년 동안 씨앗과 나뭇잎을 키워 온 내 육체의 텃밭에서
오브제가 된 달의 여백을 살려 몸의 여러 갈래 길을 묘사한다
생로병사의 원심분리기도 새로운 길을 찾는 도구다
화면은 이제 더욱 고독한 내면의 세계를 향하고
인적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바닷가 갯펄 혹은 건널수 없이 멀어져 점이 되는 섬들
회색 모노톤의 그 풍경들은 흩어져 있던 길이 홀로서기를 하며 채집해 온 내 안의 우주다
바람과 함께 춤추며 난무하던 잎맥들의 잔걱정들도
곧 태어날 생명의 근원으로 씨알이 갖는 육중한 의미도
군데군데 흠을 내어 의미의 틈을 만들고자 다정다감했던 구축의 의지도 말끔히 걷어내고
시간이 완전히 침묵 속에 흡수되어 버리듯
언제라도 사라지기를 기다리고 있는 풍경이다
그래
떠난자의 지적대로 지금 보이는 내 몸의 길들은 눈으로 확인하게 되는 외로움이고 자아이고 보이지 않는 세계의 한 단면이다
피부로부터 살과 뼈 그리고 오장육부까지 갈아엎고 삶의 의지를 일깨우는 것은 봉인된 신호가 열리기 때문이다
이별을 노래하는 시집도 내가 선택한 쓸쓸한 오브제
내 몸이 오브제로 사용하는 씨알과 나뭇잎은 길의 폭과 무게를 더 내밀한 곳으로 몰고 갈 것이다
내면의 길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 나도 모르게 몸 속의 풍경에 빠져들게 된다
그렇게 나의 몸 속에서 하나의 오브제가 된 나를 보면 이 세상에서 찾지 못했던 희망의 길도 보인다
오늘이 지나면 앞으로 지금 보다 더 많은 길을 발견해내고
그 길 위에서 내 몸이 놓쳤던 꿈을 찾게 될 것이다
자유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