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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부

안부를 묻다 고운 최치선 새벽이 파열음을 일으키며 날카롭게 찢어지는 날 나에게 ‘잘 지냈냐고’ 안부를 전했다 어제 네가 떠난 뒤에도 멀쩡하게 살아서 부지런히 세상의 공기를 축내고 더없이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사물과 사람을 만나기 위해 일터를 오가며 참말인지 거짓말인지 허풍인지 모를 음모를 꾸미고 하루가 멀다 하고 술에 취해 되돌아 온 편지 705번 버스에 몸을 구겨 넣고 시시껄렁한 내 청춘을 오늘도 혜화동 옛 찻집에 외상값 대신 맡겨둔다 함께 가던 화정의 곱창집도 추억의 간판을 내리고 ‘안녕’이란 인사 대신 쓸쓸한 뒷모습만 보여준 채 나는 나에게 안부를 물었다 끝내 확인하지 않은 내 카톡문자와 오지 않는 답장을 기다리며 여기저기 형체 없이 무너져 버린 너와 나의 시간들 아침이 오면 너에게 알려 허기진 밥그릇을 채워주.. 더보기
여름연가 고운 최치선 명동역 4번출구를 빠져 나오면 내 눈 설레게 하는 쇼윈도우 마네킹 란제리도 빨간 망사스타킹도 알록달록 액세서리도 철지난 연모로 만든 털장갑 양손에 끼고 이별이 한데 뒤엉켜 뒹구는 신축 백화점 1층 로비에 여름맞이 역시즌 파격세일을 마치고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의 여자 마네킹들이 서 있다 모서리가 닳아버린 애인의 손톱을 묻고 돌아온 저녁 만월이 명동 한 복판에 떠 있고 내 눈를 찌르는 하얀 가로등 불빛도 개념없이 서 있는 전봇대의 생식기를 비추고 오늘이 다 차면 달의 소유시간은 단축될 것이다 명동에서 본 쇼 윈도우 속 마네킹도 알몸일 때가 절정이다 행인들의 눈에는 서로 다른 가격표가 붙어있고 달빛은 잘 익은 눈 하나 비추면서 주인을 기다린다 물음표도 사라진 거리에는 헤어진 연인의 두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