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운 최치선
명동역 4번출구를 빠져 나오면 내 눈 설레게 하는 쇼윈도우 마네킹
란제리도 빨간 망사스타킹도 알록달록 액세서리도
철지난 연모로 만든 털장갑 양손에 끼고
이별이 한데 뒤엉켜 뒹구는 신축 백화점 1층 로비에
여름맞이 역시즌 파격세일을 마치고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의 여자 마네킹들이 서 있다
모서리가 닳아버린 애인의 손톱을 묻고 돌아온 저녁
만월이 명동 한 복판에 떠 있고 내 눈를 찌르는 하얀 가로등 불빛도
개념없이 서 있는 전봇대의 생식기를 비추고
오늘이 다 차면 달의 소유시간은 단축될 것이다
명동에서 본 쇼 윈도우 속 마네킹도 알몸일 때가
절정이다 행인들의 눈에는 서로 다른 가격표가 붙어있고
달빛은 잘 익은 눈 하나 비추면서 주인을 기다린다
물음표도 사라진 거리에는 헤어진 연인의 두 손만 굳건하고
텅빈 좌판 위에는 달의 허물만이 오지 않을 겨울을 대신해
딱딱한 사랑에 안녕을 고한다
더 이상의 안부는 사치일뿐이라고
'자유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너와 나의 거리 (0) | 2017.07.19 |
---|---|
점층법 또는 정지화면 (0) | 2017.07.14 |
달 (0) | 2017.06.17 |
폭염속으로 (0) | 2017.06.15 |
감기 (0) | 2017.06.06 |
절망 끝에 선 푸른 어미꽃 (0) | 2017.06.06 |
작은 것이 아름답다 (0) | 2017.06.04 |
안부-봄을 삼키는 소리 (0) | 2017.06.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