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자유시

가을의 변방에서

고운 최치선

 

 


가을의 변방에서 나는 나무를 준비하고 있다

사랑은 언제 강을 건너올까

나는 무심히 계절의 중심으로 돌을 던져본다

 

분홍 햇빛이 말갛게 서러워지는 하늘의 오후

흔들리는 나뭇잎 사이 지금 나는 숨어

너를 훔쳐보고 있다

 

바람의 빗으로 머리를 정갈하게 하고

손톱에 가을을 그려넣는 너의 등 뒤에 서서

사랑해 사랑해라고 속삭였다

 

무시로 강의 이쪽저쪽을 넘나드는 바람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투명한 손가락으로

너의 머리카락을 애무했다

 

이 세상 끝까지 나도 같이 흩날릴 수만 있다면

제자리에 가만히 일생의 침묵을 한 겹씩 벗어놓고

나무들이 걸어와 내 옆에 몸을 눕히는 시간까지... 



'자유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투명에 가까운 빛  (0) 2017.10.04
유물이 된 다리  (0) 2017.10.03
안부를 묻다  (0) 2017.09.10
시간의 비명  (0) 2017.09.07
새 살은 여름의 상처를 치유한다  (0) 2017.08.29
환청으로 나에게 온 물고기  (0) 2017.08.18
발효  (0) 2017.08.12
사라지는 사람들  (0) 2017.08.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