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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시

투명에 가까운 빛


고 운 최치선



간밤에 소리없이 피어난 붉은 으아리들이 무너지는 하늘을 받치고 서 있다‘저 힘을 어디서 보았을까’빛을 담고 있던 꽃의 품속으로 흰 나비떼 날아들어도 으아리들은 반겨 맞는다‘저 넉넉함을 어디서 보았을까’그 품에서 잃어버린 집이라도 찾은 듯 평온한 표정으로 잠이 든 나비들 땅과 하늘 사이를 오가며 경계를 허물어 주던 나비의 비행은 그리도 고단했던 모양이다 고단함을 달래주려 투명한 빛으로 자신의 방을 덥히고 시린 눈을 손으로 가려준 으아리 꽃들은 이름처럼 아름다운 마음을 가졌다‘투명한 저 꽃의 마음을 어디서 보았을까’시시각각 변하는 시절을 견디다 못해 머리에서 발끝까지 내어주고 빈껍데기만으로 살아온 어제와 오늘 바람이 불거나 비가 세차게 오면 그대로 씻겨 사라져버릴 위기에도 든든한 기둥처럼 뿌리를 내리고 하늘을 받치고 있는 으아리들이 자신의 꽃을 피워내며 견디라고 버티라고 이겨내라고 주문한다 마음이 약해지는 날에는 저 꽃들이 내뿜는 투명에 가까운 빛을 보고 기운을 얻는다 으아리의 따뜻하고 편안한 품안에서 잠든 나비처럼 나도 이렇게 어깨를 기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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